불친절한, 그리고 잔잔한 영화 '경주'
처음 영화 ‘경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박해일, 신민아 씨가 나오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관심이 있던 배우들이어서인지 포스터를 보는 순간
‘이 영화는 무슨 내용일까?’ 하는 궁금함이 일었어요.
훈훈한 영상에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닐까 하는 기대도 살짝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달달함과는 거리가 먼,
지구에서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쯤 되는...
‘잔잔, 고요, 느림‘ 이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는 영화였어요.
- 뭐하시는 분이세요?
-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 제가 뭐 가르치시는지 맞춰볼까요? 혹시 미술? 아니면 철학?
북경대 교수인 최현은 몇 년 만에 한국에 와서 어느 찻집에 들렀습니다.
예전에 차를 마시면서 보았던 춘화를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죠.
찻집은 초가지붕에 구멍 뚫린 창호지 문이 달려 있고, 이런저런 풀들이 자라나있는 한적한 곳입니다.
영화 내내 그 찻집을 찾는 손님이라곤 최현과 일본인 관광객 2명뿐이었어요.
- 제 기억에는 여기 이쪽에 그림 하나가 있었는데 혹시 그 그림 보신 적 없어요?
- 무슨 그림이요?
최현은 찻집 주인인 공윤희에게 춘화에 대해 묻습니다.
“손님들이 하도 농을 해대니까 그냥 벽지로 덮어버렸어요.”
처음엔 최현을 변태라 오인합니다.
몇 시간 뒤에 다시 찻집을 찾은 최현에게 공윤희는 보이차를 마셔보라고 권했고,
곧 그런 오해를 접습니다.
- 저기 사진 좀 찍을 수 있을까요?
- 어디를요?
공윤희는 최현을 자신의 저녁모임에 데려가고,
술자리가 끝난 뒤에는 자신의 집에까지 그를 데려갑니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살짝 기대를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공윤희가 최현의 귀를 만져보는게 전부랍니다.
공윤희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새운 다음날 그는 조용히 집을 나섭니다.
그리고 7년 전 최현과 친한 형들이 찻집에서 춘화를 보며 대화를 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 영화는 느립니다. 느려도 너무 느립니다.
먹을 것을 한가득 차려놓은 잔칫상 같지 않고
가볍게 물 한잔을 상 위에 올려놓은 느낌도 아닙니다.
요란스럽지 않고, 가볍지도 않아요.
영화는 하고 싶은 말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무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고즈넉한 산사에서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는 기분
고즈넉한 산사에서 눈을 감고 입 안에 차의 향을 느끼는 기분
이것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제가 느끼는 기분입니다.
오늘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혼자 조용히 보이차 한 잔을 마시러 가야겠습니다.
*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영화 ‘경주’에 있으며, 출처는 네이버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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